연세대학교 문과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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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사항

제목
'제1회 연세-박은관 문학상' 심사평
작성일
2023.06.19
작성자
문과대학
게시글 내용

제1회 연세-박은관 문학상 심사평


세속적인 기준으로 바라볼 볼 때 문학상은 두 종류로 구분할 수 있다. 노벨문학상이나 맨부커상처럼 유명한 문학상과 젊은 작가상이나 오늘의 작가상처럼 알 만한 사람들만 아는 문학상이다. 유명하든 덜 유명하든 문학상이란 언제나 출판계의 희(稀)소식이자 희(喜)소식이라는 점에서 그 둘의 가치는 사실상 구분되지 않는다. 문학상 수상작을 출간한 출판사에서는 여지없이 즐거운 비명을 지르게 되는 것이다. 소리가 작아진다 하더라도 비명은 비명이다.

그러나 조금 더 높은 배율의 눈으로 바라볼 때 문학상은 조금 다른 기준으로 구분될 수도 있다. 기존에 출간된 작품에 주는 문학상과 아직 출간되지 않은 작품에 주는 문학상이다. 앞서 언급한 문학상은 모두 전자에 속한다. 이들 작품을 심사하는 기준은 과거에 있다. 작품이 어떤 평가를 받았는지, 현실을 어떻게 구성했으며, 그러한 구성이 현실을 어떻게 재구성했는지, 즉 작품이 이루어낸 성과가 기준이 된다. 반면 아직 출간되지 않은 작품에 주는 문학상의 심사 기준은 미래다. 이루어 낸 성과가 아니라 이루어 낼 성과를 기준으로 판단한다. 올해 처음 시행하는 연세-박은관 문학상이 바로 그렇다.


아직 세상에 나오지 않은 작품 한 편을 ‘문학상’의 이름으로 호명한다는 것은 언뜻 모순된 일처럼 보일 수도 있겠다. 미래는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미래는 지금 우리 눈앞에 존재하지 않는다. 있음과 없음에 대한 실존주의적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시놉시스 공모전이란 말 대로 아직 없는 전체와 지금 있는 부분을 대상으로 심사한다. 그렇다면 왜, 부분과 미래를 기준으로 작품을 심사하는 걸까. 그러한 문학상의 가치는 어디에 있는 걸까.

문학은 작가의 머릿속에서 시작해 작가의 손끝에서 끝나는 한 사람의 창작물일 수도 있지만, 작가의 아이디어에서 시작해 그 아이디어를 지지하고 응원하는 사람들과 맞잡은 손과 손의 연결에서 완성되는 공동의 창작물일 수도 있다. 아직 작품을 완성해 본 적 없지만 놀라운 개념과 상상력을 가진 사람이 작가로 거듭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고, 시스템화된 지지와 응원 속에서 혼자서는 갈 수 없던 길을 낼 볼 수 있는 시도가 될 수도 있다. 연세-박은관 문학상은 새로운 과정이 위대한 작품의 출발이 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250명의 공모자가 전체의 10%에 해당하는 시놉시스를 보내 주었다. 시놉시스는 설계도이다. 설계도는 전체를 보여 줄 수 있어야 하고, 그것을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완성된 모습을 상상할 수 있도록 구체적으로 정보를 전달해야 한다. 그러나 전체와 정보만이 시놉시스의 전부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핵심 아이디어로서의 시놉시스는 앞으로 주어지는 시간 동안 발전될 수 있는 가능성을 품고 있어야 한다.

가능성이란 무엇일까. 우리는 어떤 단서에서 ‘가능성’을 찾을 수 있을까. 여기에는 작품 내적 가능성과 작품 외적 가능성이 모두 포함된다. 작품 내적 가능성이란 시대와 세대를 아우르는 보편적인 문제의식, 소설적 상상력에 대한 환상적 포부, 환상을 전달할 수 있는 현실감각과 논리 등 작품을 구성하는 직접적 요소들이 그에 해당한다. 그러나 작품에 담겨 있는 내용만으로 가능성이 충족되는 건 아니다. 이때 필요한 것이 외적 가능성이다.


외적 가능성이란 작가와 작품이라는 일 대 일 구조의 창작 너머, 한 편의 소설을 완성해 가는 과정에서 다양한 전문가들과 협업하며 공동의 목표를 이루어 가는 다중 구조의 창작을 이어갈 수 있는지 여부를 의미한다. 과거가 아니라 미래를 기준으로 판단하는 본 문학상의 본질은 바로 이 지점에 있다 할 것이다.

심사위원들은 소설의 문제의식에 공감하면서도 펼쳐질 전개 방식의 타당성과 그로 인해 도달할 결론의 다양성 등을 중심으로 시놉시스를 검토했다. 그중 본심에서 유력하게 언급된 작품은 『북으로 간 남도 소리꾼 박동실』, 『개소주 프로젝트』, 『세력들의 연어초밥』, 『당신의 인생은 몇 점인가요?』, 『먼지의 노래』, 『콕핏의 변덕』 이상 모두 여섯 편이다. 본심작들을 펼쳐 놓으면 그 자체로 한국 문화의 무의식에 대한 그래피티가 될 것 같았다. 기술과 예술, 역사와 문학을 가로지르며 저마다의 방식으로 인생을 성찰하려는 작가정신에서 동시대적인 공감과 감동을 경험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중에서도 최종 당선작을 놓고 경합한 작품은 『먼지의 노래』와 『콕핏의 변덕』이다. 『먼지의 노래』가 완성도 높은 드라마로서의 안정감과 몰입감을 보여 주었다면 『콕핏의 변덕』은 도전적이고 실험적인 결기가 느껴지는 작품이었다. 너무 다른 성격의 두 작품을 놓고 한 편을 선택하는 일은 다소 곤혹스러운 일이었다. 고심 끝에 우리는 익숙하지 않은 세계를 익숙하지 않은 방식으로 그리고자 첫발을 내디딘 작품의 손을 잡기로 했다. 작품 내적 가능성과 더불어 작품 외적 가능성을 고려한 결정이었다.

『콕핏의 변덕』은 말레이시아 항공 370편 실종 사건을 모티프로 한 재난 소설이다. 승객과 승무원을 포함해 239명이 남중국해 한복판에서 실종된 이 사건은 현재까지도 정확한 원인을 알지 못한 채 의문에 부쳐졌다. 작가는 미궁에 빠진 이 사건을 다시 들여다본다. 그러나 작가는 사건을 특정한 원인으로 환원시키는 ‘사고’의 관점으로 접근하기보다 참사 앞에서 드러나는 다양한 인간들의 선택과 욕망을 상상함으로써 환원되지 않는 진실을 추적하고자 한다. 시놉시스를 읽는 것만으로도 잠자던 감각들이 깨어나는 것 같았다.


한 편의 소설을 완성하는 과정이 항해와 같다면, 곳곳에서 들이닥치는 난파의 위험을 거부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격렬한 항해의 시간들을 함께 통과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 그것이 연세-박은관 문학상이 작가에게 지원하고자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야기를 쓰는 동시에 이야기 자체가 될 수 있는 시간 속에서 자신만의 ‘완성’에 도달할 수 있기를 바란다. 수상자에게 축하와 응원을 전한다.


심사위원(곽효환, 김인숙, 박혜진, 송진선, 조강석, 편혜영)

대표집필 박혜진